장보윤의 손에 버려진 필름 한 통이 들어온 것은 2006년 가을 무렵이었다. 당시 그녀는 한창 재개발 중이던 집 근처 공가(空家)를 배회하며 ‘사람이 없음’을 지시하는 사물들을 관찰하던 터였다. 부재를 증명하는 사물들 사이에서, 그녀는 우연히 필름 한 통을 발견하곤 이를 사진으로 인화하게 된다. 인화된 사진들에는 과거 한 가족의 삶이 순차적으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이는 빈집의 사물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상을 남긴다. 그녀는 명백히 발생했던 사건의 기록물이자 부정할 수 없이 존재의 양태를 드러내는 이미지들 앞에서, 혼란, 두려움, 슬픔 등을 경험한다. 이러한 감정들은 단순히 사진의 분위기 때문이 아니라, 존재의 현현으로 인해 생겨난 것들이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에게 도래한 감정의 실체와 대면하기 위해, 길을 나설 것을 결심한다. 여행의 목적지는 사진의 기원점, 즉 자신에게 정서적 상처를 입힌 대상이 위치했던 바로 그곳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실재와의 만남을 끝없이 지연시키고 마는 사진의 기만 따위는 미처 모르고 있었던 듯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처럼 타자의 삶에 신체적/감정적으로 개입할수록, 자신이 그 삶으로부터 배제되어 있음을 지속적으로 자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장보윤에게 허용된 것은 사진이 명시한 대상들을 ‘데자뷰’로서 경험하는 것뿐이었다.
리사의 사진앨범 속 기억과 추억들은…… 일상 속의 아주 평범한 장면을 만들어내며 곧이어 자취를 감춘다. 이러한 반복적인 상황들은 나로 하여금 리사의 시간을 떠올리게 하고 또다시 그것들이 언제든 달아나는 상황을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어떤 인물과 사물이 연속적으로 사라져 버리는 순간들은 결국 끊임없는 상실감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여기서 장보윤은 이러한 상실감을 해소하고자, 자신의 위치를 ‘1인칭(리사라는 타자) 주인공 시점’에서 ‘1인칭(현재의 자신) 관찰자 시점’으로 전환한다. 그리고 리사가 아닌 예술가 주체의 자리로 귀환하여, 실재를 죽음에서 건져 올리는 행위들을 실행에 옮긴다; 리사가 자주 가던 호수에서 사진을 찍고,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한 추모식을 촬영하며, 티켓, 신문, 지도 등 여행의 잔여물들을 채집한다. 이 같은 행위들은 눈앞에 현현했다 이내 부서지고 숨어버리는, 영원히 대면할 수 없는 타자를 붙잡기 위한 자위적 제스처들이라 할 수 있다.1
실재의 죽음을 그 유사물들로 대체하려는 의지는 첫 번째 여행 작업이었던 <기억의 서: K의 슬라이드>에서도 포착된다. 이 작업은 1968년부터 1978년까지 일본을 여행했던 한 남자의 슬라이드를 바탕으로 이뤄진 작업이다. 장보윤은 슬라이드에 표기된 날짜와 장소를 단서로 남자의 여행을 추적하면서, 사진 속 인물과의 만남이 끝내 가능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 같은 부재에의 각성은 ‘배경은 있되 존재는 없는’ 풍경을 그대로 포착하거나, 슬라이드 속 인물을 인위적으로 지우는 등의 제스처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실재에 대한 갈망도 지속되는데, 이는 사진이 부단히 환유하고 있는 인물이 결국 유사(類似) 인물로 위조된 것에서 확인된다. 장보윤은 슬라이드의 주인공을 ‘K’라는 허구의 인물로 상정하고 그가 머물렀을 법한 방을 꾸몄으며, 가공된 K의 서신들이 팩스로 수신되는 상황을 연출한다. 이러한 유사 인물/사건의 창조는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이라는 양극단적 상황 속에서 한 예술가가 느꼈던 고뇌의 짐을 보여준다.
존재-했음
최근 장보윤은 천년 고도(古都) 경주를 또 하나의 부재 확인의 장소로 주목하고 있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작가 수중에 들어온 사진은 총 3,500여 장. 그 중 장보윤의 시선을 끈 것은 아무런 관련 없는 이미지 간에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경주의 풍경이었다. 이번 여행의 직접적인 촉매제가 된 한 가족의 앨범에도, 신혼여행, 가족여행, 수학여행, 총 세 번에 걸친 경주 유람이 기록되어 있었다. 사실 경주는 서로 다른 집단과 개인의 사진들에서도 동일하게 포착될 만큼 한국인에게 보편적이고 친숙한 지역이다. 많은 문화 유적과 유물이 잔존해, 민족국가 형성기에는 겨레의 정신적·물리적 근원지로 제고되었고,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1989년)까지는 국내의 대표적 관광지로 각광 받아 왔다. 그러나 현재는 근대적 판타지의 생산지로서 누렸던 광영을 잃고, 버려져 방치된 도시로 변모해 가고 있다. 명승고적지로서의 외양은 그대로이나, 더 이상 신혼의 단꿈도 소년의 비전도 움트지 않는 곳. 낡은 사진 앨범처럼, 기억의 한 편으로, 그리고 삶의 외곽으로 밀려난 이 도시는 ‘이제 누구도 찾지 않는(않을) 장소’가 되어 버렸다.
장보윤의 경주 여행은 바로 이 과거에 정지되어 있는 시간성 때문에 시작된다. 그녀는 경주를, 불특정 다수의 인물과 사건이 모두 과거형으로 존재하는 도시이자, 따라서 애초부터 실재와의 만남이 불가능한 곳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인식은 <천년 고도>를 이전 작업들과 차별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앞서 언급한 바처럼, 이전 여행들은 타자의 실재성을 확인하기 위해 떠난 만큼, 존재와 부재 사이를 부단히 교차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경주 여행은 ‘과거에는 분명 존재했으나 현존 자체를 증명할 수는 없는 상태,2 즉 “존재-했음”이라는 노에마를 의식하는 경로로 이어진다. 존재-했음은 과거 시제와 현장 부재라는 두 가지 조건을 함축한 상태로서, 작업에서는 이 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맞물려 구동된다.
우선 장보윤은 두 개의 영상물을 통해 경주라는 특정 지역에 과거형 시제를 부여한다. 35년간 택시 기사로 일해 온 남성은 경주를 스쳐간 사람들과 그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더듬어 회고함으로써 작가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가 과거에 위치하고 있음을 부각시킨다. 또한 흐릿한 유튜브 동영상과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신라의 달밤’은 경주를 지난날의 도시로 끊임없이 환유하면서 현재로부터 탈각시킨다. 이렇듯 장보윤은 경주에 얽힌 기억들을 불규칙하게 호출하여, 대상으로의 순차적인 추적을 방해하고 실재와의 만남을 한없이 미끄러트린다. 또한 그녀는 추적의 대상을 한 명이 아닌, 다수로 설정하여 현장 부재를 증명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택시 기사가 회상한 신혼여행 코스로 이동하면서, 불현듯 수학여행 왔던 여고생의 시선을 쫓기도 하고, 때론 자신의 눈 앞에 비친 경주의 모습을 그대로 포착한다. 이는 경주 여행이 단일시점을 쫓던 기존 작업들과 달리, 분열된 복수의 시점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텍스트를 쓰는 과정에서도 사춘기 소녀와 갓 결혼한 여성, 두 명의 목소리를 결합함으로써 서로 다른 이야기가 공존하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다중시점∙대위법의 사용은 이곳에 머물렀던 모든 인물과 사건을 명시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유일무이한 (특정/어떤) 존재로 환원해 올라가는 의식 자체를 차단해 버린다.
요컨대 장보윤은 모든 이의 기억 속에 내재해 있으나 그 기억의 실체와 대면할 수 없는 상태를 드러내기 위해, 과거 경주의 모습을 비선형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재했던 대상이 그 대리물들로 기표화되는 과정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과거와 현재, 존재와 부재, 집단과 개인이 직조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우리는 지난 시대의 사진과 장보윤의 사진이 뒤섞여 배치된 작품 앞에서, 결코 두 개의 시간과 두 개의 시선, 그리고 두 개의 존재 상태를 구별해 낼 수 없다. 아마도 그녀는 이러한 직조를 통해, 박제된 장소를 무한한 사건의 발생 지점으로, 분리된 역사를 살아있는 시대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리라.
대개 장보윤의 여행은 사진, 슬라이드, 일기장 등 존재를 증언하는 명백한 증거에 의해 시작된다. 그러나 그러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여행은 실재와의 사후적 만남만을 용인한 채 종결되고 만다. 일전에 그녀는 작업이 끝날 때면, 존재의 상실에서 오는 비애,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자괴감을 느낀다고 토로한 바 있다. 사진을 찍고 드로잉을 그리고 텍스트를 쓰는 재현 행위들은 이러한 절망감을 초극하기 위한 노력들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이 같은 수행적 실천들은 상실에 대한 “보상 아닌 보상”이 되어 되돌아온다.3 과거의 사건이 소환되고 타자의 부재가 대리 보충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시공간의 열림, 즉 다층적 감각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실재는 죽었지만, 그 흔적들과 끝없이 유희할 수 있는 여행, 이것이 바로 장보윤이 제안하는 다산(多産)의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