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장보윤 작가의 작업을 맨 처음 본 것은 리움 미술관에서 열린 《아트 스펙트럼 2012》에서 였다. 이 전시에서 작가는 총 350여장의 주인 없는 사진을 수집한 뒤 사진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경주’라는 장소를 전경화한 작업 <천년 고도>를 선보였다. 70-80년대 경주는 수학 여행, 신혼 여행, 가족 여행의 필수 코스였다. 알다시피 ‘그’ 경주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데 그 까닭은 관광지로서 전성기였던 경주가 쇠락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다만 사진 매체 자체가 현존의 부재를 증거하기 때문이다.
이 부재는 <천년 고도>의 일부인 사진 속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겪은 적도 없는 과거를 애틋한 노스탤지어로, 혹은 섬짓한 예감으로 감각하게 한다. 사진은 무엇을 찍건 간에 찍는 순간 즉각 ‘바로 지금’이라는 현재로부터 떨어져 나와 더 이상 ‘여기 없는’ 과거를 표시하는 매체다. 이처럼 사진이 필연적으로 발생시키는 과거-현재 간 시차는 주지하다시피 ‘기술 복제 시대’ 이후 ‘민주화’된 예술의 아우라가 잔존하는 시공간을 개방하기도 한다. 즉 시차의 시간성과 물질성으로 인해 사진에는 우리가 끝내 해석의 영역으로 환원할 수 없는 잔여 또는 잉여가 끊임없이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천년 고도>에서 결코 원형으로 복원될 수 없을 과거의 ‘잔해’에 대한 “환상이나 상상”[2]을 통해, 허구와 사실 사이에서 어쩌면 존재 했을지도 모르는 일종의 반(反)역사로서의 ‘가능 세계’를 펼쳐 보였던 장보윤은, 이번 금천예술공장에서 진행한 두 작업에 있어서도 같은 태도를 취한다.
2021년부터 진행 중인 <블랙 베일 Black Veil> 연작은 파독 간호사들의 삶에 대한 “공식화된 서사”[3]로부터 버려지고 잊혀진 “또 다른 이야기들”[4]을 다룬다. <블랙 베일> 연작은 먼저 파독 간호사의 실제 삶에 기초한 편지 형식의 대본을 한국에서 거주하는 해외 유학생 배우가 마치 대독하듯 낭독하는 영상, 그리고 파독 간호사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증언과 같은 사료를 허구적으로 재구성해 과거와 현재의 시점을 넘나드는 여러 형식의 ‘조각’ 글로 짜깁기한 출판물의 형태로 제작되었다.
흔히 언론에서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 낸 주역이자 파독 광부와 마찬가지로 외화 벌이를 위한 수출 노동자로 잘 알려진 파독 간호사의 삶은, <블랙 베일>이 점유하는 “역사와 개인, 기록과 기억 사이”[5]라는 완전히 채워질 수도 좁혀질 수도 없는 ‘틈’이라는 공간 속에서 어렴풋한 ‘누군가’의 형상으로 드러난다. 이름도 얼굴도 없지만 배우의 입을 빌려, 그리고 작가의 글을 빌려 출현하는 이 ‘누군가’의 목소리는 이를테면 대문자 역사가 망각한 그것의 “그림자”[6], 즉 유령의 목소리다. 유령은 실체가 없고, 단지 『햄릿』에 대한 자크 데리다의 독해가 그러하듯 단지 자신의 목소리에 대한 상대의 응답 가능성(responsibility)을 요구할 뿐이다.
장보윤에게 이러한 응답 가능성이란 과거에 대한 가능한 사실로서 주어진 사료와 증언이라는 한계 끝에서 유령과 같은 타자에 대한 감정 이입을 감행하는 능력과도 같다. 삶과 죽음의 통로 역할을 하는 ‘영매’처럼 작가는 작업을 통해 공식적, 지배적 역사 서술의 언어로는 통약될 수 없을 과거의 재현 불가능한 “푸티지(footage)”[7]를 일종의 허구적, 대안적 사실의 형태로 유출한다.
가와다 후미코의 책 『빨간 기와집』[8]이 다루는 일본군 ‘위안부’ 배봉기의 삶에서 출발한 작업 ‘오키나와’ 연작 역시 이러한 시도의 연장선에 있다. 먹고 살수 있다는 말에 현재의 충북 예산을 떠나 1943년 오키나와현 도카시키 섬에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된 배봉기는 오키나와에서 강제 추방되지 않기 위해 한반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자신이 ‘위안부’ 피해 생존자임을 증언해야 했던 인물이다.
1975년 당시 일본 사회 내에 배봉기의 증언이 가져다 준 파장과 충격에도 불구하고 전후 이데올로기로 인해 그의 이름은 특히 남한 사회 내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여성학자 김신현경은 한 글에서 배봉기를 하위 주체인 ‘서발턴’으로 간주하고 그의 삶과 죽음이 어떻게 ‘침묵’ 속에 잠기게 되었는지를 분석한 바 있다.[9]
‘위안부’ 피해 생존자로 공적으로 등장하기 이전까지 그는 무국적자였기에 말할 수 없었고, 등장 이후에는 조총련과의 관계로 인해 남한 사회에서 언급이 금기시되었기에 말해도 들어줄 청중이 없었으며, 그의 죽음 이후에는 주검을 둘러싸고 민단과 조총련이 그의 삶과 죽음을 정치적 프레임 안에서 자원화하며 “‘대신 말하기’의 정치를 활성화”했기에 그의 삶과 죽음을 ‘다르게’ 재현할 가능성 또한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10]
하지만 애당초 남겨진 사료와 증언과 같은 역사적 증거 목록 자체가 희박할 뿐만 아니라 그조차 온전한 ‘사실’로서 확인되기 어렵다면, 애당초 ‘다르게’ 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란 처음부터 그것의 불가능성이라는 한계에서 출발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사이디야 하트먼의 ‘비판적 우화(critical fabulation)’를 염두에 두고 말하고 있다.[11] 그는 노예제에 대한 공식적 아카이브라는 고통스러운 유산과 함께, 그리고 그것에 ‘반해’ “발생했을지도 모르는 것이나 말해졌을지도 모르는 것이나 행해졌을지도 모르는 것”[12]을 한 번 상상해 보자고 주장한다.
그가 이러한 역사 서술의 방법을 택한 까닭은 “서사 담론의 여러 층위를 부수어 납작하게 만들고 서술자와 발화자를 혼동시킴으로써 (...) 역사, 서사, 사건, 사실 속의 논쟁적 인물이 분명하게 드러나길, 담론의 위계가 전복되길, 목소리들의 충돌 속으로 공인된 발언이 집어삼켜지길”[13] 바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오키나와’ 연작은 전쟁, 국가, 남성 폭력의 ‘피해자’나 ‘생존자’로서의 ‘공인된’ 이름 너머 어쩌면 배봉기가 언젠가 발견했을지도 모르는 오키나와의 ‘평범한’ 풍경을 ‘상상’하게 만드는 입구처럼 작동한다. 장보윤은 무정하리만치 침묵을 지키는 듯 보이는 오키나와의 아름다운 풍경과 간간히 웃고 떠드는 사람(들), 멋대로 자란 식물과 아주 오래 그 곳에 있었던 것 같은 인공물을 사진으로 담았다.
그 중에서도 내 눈길을 사로 잡은 것은 주렁주렁 열린 바나나였다. 『빨간 기와집』에서 배봉기는 “산에 가면 과일이 지천인 데다 입을 벌리고 나무 밑에 누워 있으면 그것이 저절로 입으로 떨어진다던”[14] 감언에 속아 도카시키 섬으로 향하는 나하 부두에 도착했다.
당시 배봉기의 소망을 이제와 실현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찍힌 바나나의 사진을 보며 나는 어쩌면 오늘날 사진이란 망각된 타자의 목소리를 ‘지금 여기’에 불러 들이는 매체일 뿐만 아니라 타자를 ‘위한’ 허구적, 제의적 공간을 마련하는 행위의 매개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사람이 봤을 법한 평범한 광경”은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빈틈 없는 거대/지배 서사 속에서 유일한 판단 중지의 순간으로 출현한다. ‘오키나와’ 연작은 바로 이러한 순간을 스스로 도래하게 만듦으로써 이뤄질 수도 회복될 수도 없는 과거의 유토피아적 염원에 위로를 건낸다. 이는 역사를 통해 역사에 저항하는, 장보윤의 타자를 향한 미약하나 끈질긴 ‘응답’일 것이다.